한류 원조는 1930년대 中 ‘영화 황제’ 김염(金焰)

[華流] 중국 여배우 진이(秦怡)와 결혼, 항일 영화에 단골 출연

배우 김수현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류 톱스타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85년 전 중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또 한 명의 한국 배우가 있습니다. 바로 김염(본명 김덕린 1910~1983)입니다. 이목구비 뚜렸한 지적인 외모에 로멘틱한 눈빛을 지닌 그는 ‘영화 황제’라 불리며 1930년대 중국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김염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김덕린. 아버지는 세브란스 의대 1회 졸업생인 한국 의사 1호 김필순씨입니다. 김필순씨는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돼 중국 흑룡강성 치치하얼로 망명했다가 일본인에게 독살된 독립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김염은 고모 밑에서 자라다가 1927년 열일곱이 되던 해에 단돈 7위안을 가지고 상해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극장 매표원으로 일하던 중 손유(孙瑜)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계에 데뷔합니다.

김염2

그후 ‘풍류검객(1929)’. ‘일전매(1931)’, ‘도화읍혈기(1932)’, ‘모성지광(1933)’ 등에서 주연으로 맹활약을 하며 중국 영화계의 황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어 1934년에는 손유 감독과 항일영화 ‘대로(大路)’를 제작했습니다. 당시 김염이 직접 부른 타이틀곡 <대로가(大路街)>는 인민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애국 가곡이 돼 청년들의 항일정신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김염은 또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을 다룬 ‘장공만리’에 출연하고, 만주사변 때는 자신의 브로마이드를 판매한 자금으로 항일운동 지원에 적극 나섰습니다.

김염과 그의 중국인 아내 진이

김염과 그의 중국인 아내 진이

1947년 그는 중국 여배우 진이(秦怡 1922~)와 재혼을 합니다. 진이는 주은래 총리가 꼽은 ‘중국 4대 미녀’ 가운데 한 명입니다. 지금도 생존해 있어 ‘중국 영화계의 산증인, 기적’으로 불리는 그녀는 남편을 항일투쟁 영화에 단골로 출연한 독립투사로 회고합니다. 김염은 30여년간 총 40여편의 영화에 출연해 중국 영화사에 커다란 궤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때 농촌으로 하방하면서 얻은 폐기종 등의 합병증으로 1983년 12월27일 73세의 나이로 상해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김수현, 이민호, 엑소…최근 중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한류스타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에 앞서 85년 전 이국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원조 한류 스타 김염의 존재를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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